MYARTS

  • 작가명 : 낸시랭, 캔버스  유화 168 x 135cm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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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낸시랭은 강남사람들을 해방시킨다'

전시장에서의 일이었다. 존경하는 선배이자 팝아티스트 강영민작가가 낸시는 겂이 없다고··· 그게 낸시랭의 무서운 파워다! 라고 말했더니 삼청동 코너갤러리 대표이자 큐레이터인 양지윤은 낸시랭은 잃을게 없어서 저럴 수 있다고 했단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이게 욕 같기도 하고 칭찬 같기도 했다.
'충돌··· 내가 부러워서일까? 아님 불편해서일까?'

'아티스트는 정신적 귀족이고, 강남사람들은 물질적인 귀족이다.'
나는 대학원 때 쯤 집이 망했을 뿐, 뼈 속까지 강남 사람이다. 그렇기에 난 지금의 강남 사람들과 충돌한다.
나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이후 아주 어릴 때부터 강남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 모든 유년시절과 청소년기, 성인기를 보내고 자라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해외여행을 다니고 인터내셔널 스쿨을 졸업했다. 언듯 보기엔 매우 우파적 성향이며, 출신성분 자체부터 소위 말하는 된장녀이자 엘리트 강남이라 말 할만하다.
이런 내시의 삶과 모순되는 것은 낸시는 2010년 영국 런던에서 '거지여왕:UK Project' <개인이 국가다>라는 콘셉트의 작품부터 시작해서 포털사이트 네이트 뉴스 앤 톡에서의 트위터와 SNS의 적극적 사회 정치적 발언 활동, 작년 4.11 투표독려 '앙' 퍼포먼스에 이어 '내정간섭' 그림의 개인전에 이르기까지 매우 사회적으며 Politic한 정치적인 콘셉트의 작품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고 충돌되는 극과 극 사이에서 낸시는 그동안 미술계와 연예계를 넘나들 듯이 놀고 있다.
이런 미묘함 속에서 낸시가 강남을 변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Like Paris Hilton. 그래 솔직히 힐튼 상속녀인 그녀는 싸보이나 자유가 있다.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없다.

강남사람들 혹은 부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자유로울 수 없으나 낸시는 잃어보고 나서 기존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고, 마음이 부유해짐을 느끼게 되었다. 즉 그들이 처음에는 내가 불편하면서도 자유라는 가치를 느끼게 되면, 낸시는 '진짜'를 느끼게 되면 해방감과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Just be yourself, 난 그들을 자연인으로 만든다. 내가 잘났든 못났든,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단지 Just be yourself!
이번 내 작품들에 등장하는 거물들, 난 사실 이 사람들을 잘은 모른다. 이러한 유명인들과 자연인으로서 놀고 싶을 뿐이다.
서로 나름대로 개성도 있어 보이는 이들은 내 그림에서는 웃기게 보이기도 하고, 귀엽게 보이기도 한다.
조형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이들은 마치 신격화 한 듯 멋잇고 진지하고 화려한 느낌의 구성을 보이고 있으나, 오히려 이런 구성 요소들이 더 오버랩 된 느낌을 진지하게 가중시키며 각 거물들위에 올려진 낸시의 분신인 코코샤넬과 함께 그 조형적 화면구성을 팝아트로서 톡톡 튀는 감각과 즐거움, 깃털보다도 가벼운 자유로운 느낌을 관객에게 유쾌하게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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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평론
낸시랭의 강남귀환 - 낸시랭과 강남친구들 / 팝아티스트 강영민

“쁘띠거니. little & pretty. 넌 왜 이리 귀여운 거니.” ? 낸시랭
(거지)여왕의 귀환
낸시랭이 돌아왔다. TV, 인터넷, 각종 매체에서 매일 지겹게 보는 데 무슨 소리냐고? 그녀의 고향인 청담동에 돌아왔다는 말이다. 얜 맨날 청담동에서 놀지 않냐고? 그렇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삐까번쩍한 친구들과 함께다.
작년 말엔 정치인들을 대동해 강북에 있는 청와대를 공습하더니, 이번엔 홈타운이라 그런지 한결 편안한 분위기다. 친구들의 면면을 보면 확실히 거물들이다. 쁘띠거니(이건희)를 필두로 하여, 김정일, 후진타오, 오바마, 워렌 버핏, 스티브 잡스, 마이클 잭슨, 빈라덴, 카다피, 예수, 부처. 친구들 모두 코코 샤넬을 한쪽 어깨에 얹고 ‘청담동이란 클럽’의 VIP룸에 입장한다. 왜 모였나 묻지 마라. 이런 거물들도 자연인으로 돌아가 자유롭고 편안하게 한잔 할 수 있는 게 ‘강남스타일’이다.
아하, 강남이라. 그러면 질문을 바꿔보자. 낸시랭이 돌아왔다면 떠난 적이 있을 터. 그게 언제란 말이냐.

일리아드 낸시랭
그 시작은 그녀가 낸시랭이라는 ‘미술’ 캐릭터를 만들어 대중에게 알려 질 2004년 무렵이다. 놀기 좋아하는 된장녀, 아무리 잘 봐줘야 강남 부잣집 미대생이었던 그녀는 집안이 망한 뒤 베니스로 떠난다. 그 왜 있잖나. 빤스만 입고 성베드로 성당앞에서 깽깽이질 하던 베니스비엔날레 퍼포먼스. 그 후 베드로의 은총을 받았는지(낸시랭은 기독교인이다), 베니스물을 잘 못 먹었는지 모르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 러브 달러”라든지 “명품이 좋아요” 등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언행으로 매스컴을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집안이 망했다는 건 물질적인 기반만이 무너졌다는 게 아니었다. 그건 자신을 길러 온 토대인 ‘강남’이라는 상징가치도 함께 사라질 위기였다는 신호였다. 그녀는 영악하게도 ‘강남’이라는 상징가치의 빈자리를 ‘미술’이라는 상징가치로 대치한다. 그리고 곧장 그 상징가치를 사용가치로 환전하려 시도했다. ‘속물’ 아티스트 낸시랭의 탄생이다.
그러나 그건 대중이 기대하는 아티스트상이 아니었다. 속물 아티스트라니. 아티스트는 모름지기 자신만의 세계를 고민하고, 창조하기 위해 고뇌하며 세상의 가치와 자신만의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 아니었던가. 그 제스춰라도 하지 않으면 공분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역시나 ‘깃털처럼’, ‘비키니처럼’ 가벼운 작품세계는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어쩜 그리 뻔뻔한지 좀 떴으면 겸손할 줄도 알아야지 뭐가 그리 잘났다고 각종 매스컴을 도배하며 “큐티, 섹시”를 연발 하는 건지. 미국국적에 강남에 살며 명문대를 졸업한 준수한 외모의 아가씨가 취해야 할 ‘세속적’ 예술가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세속적’이란 말의 정의가 달라진 건지.
그녀의 말과 과거 주변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녀도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대학원을 다니며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유학을 다녀와 미술인으로서 명예도 얻고 성공도 하는, 또 그걸 못 얻더라도 시집을 잘 가서 안정되게 작가생활을 하게 되는 그런 행복한 스토리를 꿈꿨다고. 하지만 어쩌겠나. 기운 가세는 그녀를 ‘급기야’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한다. 알바를 하며, 처음으로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 고민이 그녀가 진지하게 아트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일까. 강남이 주 활동 영역이었던 그녀에게 아트란 미대를 나와 작품 활동을 하면 자동으로 얻게 되는 하나의 타이틀에 불과했다. 목적 그 자체, 아트 그 자체를 고민 한다는 건, 언제든지 제도화 된 미술계와 물신화된 강남사회에서 멀어지게 될 수 있는 위험요소다. 그녀는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 강남이라는 ‘마음의 체제’(김홍중)를 떠나게 된다. 그녀는 그 체제에서 이질적인 존재가 됨으로서 차별화 전략을 꾀한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마음은 떠났지만 몸뚱이는 안 떠났다. 그녀는 끈질기게 강남의 주변부를 맴돌며 몸뚱이의 거처를 옮긴다. 지금은 드디어 강남을 떠나 강북에 산다고 한다. 그래봤자 ‘신흥강남’ 강 건너 이태원이지만.

낸시랭과 까만사람들
그녀가 세속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동시에 그로 인한 내면의 발견과 몸뚱이의 거처를 고민할 무렵 현실미술과는 담쌓은 듯(현실정치와는 대조적으로)이 보였던 진보적 지식인들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 소개하자면,
“최근 낸시랭이라는 미술가가 대단히 화제를 뿌리고 인기도 누리고 있다. 그녀는 은밀하게 돈을 밝히는 고명한 미술가와 달리 자기는 당당하게 노골적으로 돈을 밝히며 예술의 근엄한 젠체하는 태도를 경멸하고 자신의 인기와 명성을 적극적으로 즐긴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자신 스스로가 미술 상품이라고 자처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언제나 역설하는 말버릇을 그대로 빌어, 낸시 랭이라는 ‘물건’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 물론 가장 올바른 태도는 그것을 그저 ‘물건’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녀의 주장처럼 예술은 언제나 돈이었으며 그것은 언제나 판매되었고 거래되었다. 그녀의 그런 주장에 대하여 충격을 받는 체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것이다. 왜냐면 한 번도 예술의 타자는 경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술의 타자는 정치일 뿐이다.” - 서동진, 고진, 하루키, 시부야케이, 포스트락 그리고 낸시랭 (2006)
“낸시랭은 자신의 신체를 자본화해야만 하는 한국의 여성들과 그녀들이 속한 병리학적인 사회 분위기를 대표한다. 그러나, 그녀의 발칙함은 '된장녀스러움'을 극구 부정하거나 애써 감추려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이라 주장하는 데에 있다.” - 진중권, 호모코레아니쿠스, (2007)
“우리는 낸시랭을 조롱할 수는 있어도, 비판할 수가 없다.” - 이택광, 즐거운 지옥: 낸시랭 또는 한국 자본주의의 희극 (2007)
*이택광, 서동진, 진중권 등 진보지식인들이 꾸준히 낸시랭 ‘현상’에 대해 논평한 것과는 달리 미술계는 이 현상에 대해 꾸준히 퍽 적조하다.
서동진의 해법처럼 낸시랭을 그저 ‘물건’으로 대하면 되는데 불구하고 소위 먹물들(까만사람들)의 비판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들이 놓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움직이는 물건’이었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상징계의 틈새를 땜빵하는 자본주의의 브랜드뉴네임은 신자유주의였고 낸시랭은 신자유주의에 던져진 물건(ob-ject), 끊임없는 신상이 되기 위해 바지런히 진화를 준비한다. 낸시랭이란 물건/상품은 까만사람들의 페티시즘 자극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낸시랭 스스로 왕관을 쓰다
그 진화의 흔적중 하나는 2010년 ‘개인이 국가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런던에서 벌어졌던 ‘UK project'(UK는 United Kingdom의 약자로 개인이 왕이 되는 왕국의 연대란 뜻)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옥스퍼드의 보들리안 도서관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빼들고 거지여왕으로 변신해서 영국여왕 엘리자베스2세의 생일잔치에 난입해서 이렇게 요구한다. “나에게 땅 한평을 달라” 이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했던 런던에서 여전히 군림하는 여왕에게 마르크스의 말을 업그레이드해 돌려준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 이제 노동은 낸시랭에게 현대미술이라는 상징가치로 대치되어 왕좌를 꿈꾼다.
물론 그 후는 익히 아는 바대로 각종 인터넷 포탈검색어의 1위를 차지한 ‘낸시랭 국가망신’이었다. 낸시랭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은 국가망신이란 키워드를 설명하는 데 거추장스러운 뱀발일 뿐이었고. 이쯤 되면 낸시랭식 ‘몰락의 에티카’(신형철)다. 다시 ‘속물아티스트론’으로 돌아가 보자.

다시 속물의 세계로
나는 그무렵 낸시랭에게 ‘자신이 속물을 자각하며 괴로워 할 줄도 아는 고급속물’(김수영)까진 안 바랬다. 2000년대를 풍미했던 소위 칙릿(chick-lit)의 번성기에 ‘여우같은 속물’들이 설파하던, “내가 속물이라고 남에게 광고하고 다니지는 마라. 누구나 갖고 있는 본성에 솔직해지는 것뿐인데 굳이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색안경 끼고 보게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남인숙,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2004)란 말정도는 들어 봤을 거 아닌가. 그러나 고급속물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낸시랭은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전략을 택했다. 그건 ‘에라 모르겠다. 그냥 돌파’식으로 보였다. 위태위태 아슬아슬. 처세의 매뉴얼이 만천하에 공개 된 시점에서 그녀의 행보는 스놉들의 세상을 백치미로 돌파하려는 위험한 시도로 보였다. 먹물들도 간파해서 정체를 알려댄다. 이제 몰락은 시간문제다. 그리고 낸시랭은 거지여왕이 됨으로서 그걸 택했다. 속물아티스트로서의 성공에서 몰락. 낸시랭의 반전이었다.


낸시랭과 강남좌파
그러나 반전은 계속된다. 강남이라는 체제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동거하기. 속물이란 이미 확립 된 권위를 의심하지 않는 존재다. 속물은 남들의 이목을 신경 쓰며, 자기계발에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지만 정작 그 목적은 고민하지 않는다. 아니 그 고민을 할 내면이 부재한다. 그 내면을 타자의 욕망으로 가득 채워 넣는 존재다. 정작 자기 자신이란 존재 하지 않는다. 강남엔 그래서 수입품이 넘친다. 당연하다. 오리지널이란 내면을 드러내는 누추한 존재일 뿐이다. 자신의 텅 빈 내면을 이미 확립 된 권위들로 위장한다. 내면이 텅 비어 있을수록 귄위의 약발은 잘 받는다. 낸시랭의 내면이야 알 수 없다만, 어쨌든 낸시랭은 주류사회에 ‘아트란 무엇인가’란 화두를 계속 던져낸다. 그 방식은 강남좌파가 던진 화두. ‘강남에서 좌파하기’의 전략. 내파(內破)와 가족유사성이 있다고 느꼈다. 강남좌파의 탄생(강준만)도 공교롭게 낸시랭이 출범하던 참여정부의 시기와 겹친다.

정치논객 낸시랭
총선과 대선의 해를 맞은 2012년, 작년에는 또 한번의 반전이 있었다. 낸시랭은 이제 마치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 봐’(유승준) 식의 행보를 즐기는 듯하다. 정치평론을 하는 팝아티스트의 탄생. 한 인터넷 매체의 명사들의 컬럼을 맡은 그녀는 호스트측의 짐작되는 바 있는 안전한 의도를 배신하며 전방위적으로 각종 시사 현안에 댓글을 달기 시작한다.(그 과정의 여파는 다들 아시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진영에서는(그걸 보수진영에서만 느낀 건 아니지만 보수는 언제나 반응에 성실하다) ‘일베’의 정신적 멘토이자 보수진영의 행동대장을 자처하는 변희재를 급파(셀프급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 결과는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대로다. 그 와중에 한 가지 흐뭇한 성과가 있었다면 변희재의 반전,진보논객의 슈퍼스타인 진중권과 공개토론인 ‘사망유희’에서 승리했다는 것. 이 결과는 진영을 떠나 인정투쟁에 청춘을 바친 한 사나이의 인간승리의 쾌감을 우리에게 맛보게 해준 흐뭇한 사건이었다고 본다.
정치논객으로서의 한 팝아티스트의 변신과 적극적인 현실정치담론으로서의 개입이 ‘예술가의 의도냐 아니냐’, 또는 ‘뜰려고 그랬다’ 식의 지엽말단적인 문제로 그 결과가 몰고 온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논점을 흐리려는 찌질한 시도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개입이 어떤 상호작용을 불러 일으켰냐하는 것이다. 서동진의 말마따나 “예술의 타자는 언제나 경제가 아니라 정치”였지만, 더 이상 낸시랭에겐 그 테제가 유효하지 않다. 이제 그녀에겐 정치도 그녀의 ‘나와바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 정치에게 그녀는 새로운 오브젝트, 신상이 됐다. 대표적인 진보매체 오마이뉴스가 대선올레의 마지막으로 그녀의 ‘내정간섭’전을 찾아 청와대공습퍼포먼스를 생중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한 진보인사들의 팟캐스트프로그램인 ‘유시민 노회찬의 저공비행’에서는 낸시랭이 박근혜에게 던진 멘트, “엄마 굶어도 좋으니까 때리지만 마세요”를 꼽으며 지난 대선의 최고스타로 그녀를 부추겨 세우기도 했다. 그에 대해 낸시랭은 어처구니 없지만 지극히 팝아트적인 화답을 한다. 한 케이블 게임프로그램에서 ‘일본인’ 사유리를 깨부시며 “낸시랭 천재설 돌고 있는 거 아시죠?”였다. 어쨌든 2006년 낸시랭에 의해 도출 된 서동진의 명제는 적어도 낸시랭에 한해서는 재고되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그것이 또 다시 낸시랭에 의해서라면 좀 씁쓸할 수도 있겠다만. (물론 나는 서동진이 이 명제를 끊임없이 얘기해주길 바란다. 여전히 한국미술계는 정치적이지 못하니까)

낸시랭과 팝아트
한가지 주요한 점은 낸시랭은 팝아티스트라는 것이다. 그녀는 낸시랭이란 캐릭터를 ‘걸어다니는 팝아티스트’로 처음부터 브랜딩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수면위로 떠오른 (한국적) 팝아트는 2000년대 중반 낸시랭과 ‘행복한 눈물’에 의해 관용어가 돼버렸다. 그 여파는 미술시장에도 미쳤고 그 결과 모두가 팝아트를 하면서도 팝아트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웃지 못 할 사태가 벌어졌다. 그건 자신이 팝아티스트라고 주장하는 낸시랭과 사뭇 대조적인 태도로 보였다. 정리해보자. “아방가르드가 중심을 주변화 하는 것이라면, 팝아트는 키치를 주변화”(블로거, 지니)하는 것이다. 한국사회 특유의 중심주의일변도는 미술인들이 미술계란 상징가치를 통해 사회의 중심을 향하려는 은밀한 욕망과도 부합된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미술시장을 향한 노골적인 욕망으로 그 은밀한 매력은 안타깝게도 너무나 빨리 시효를 상실했다. 키치가 이미 알려진 잘 팔리는 미감에 대한 반성 없는 추종이라면 미술시장의 성황은 팝아트와 하이퍼(나는 하이퍼도 팝아트로 본다)로 양분되는 거대한 키치의 전쟁터였다. 팝아트는 이렇게 시장중심주의에 충실하게 복무하였다. 하지만 팝아트는 중심주의를 주변화 하는 기능도 있다. 지니의 도식대로라면 ‘팝<-아트’가 아니라 ‘팝->아트’ 겠지만 나는 ‘팝<->아트’라고 본다. 팝아트는 팝과 아트사이의 교통, 충돌을 야기해야 한다. 팝아트가 난해하고 고루한 미술계의 허위의식을 쉽고 단순한 특유의 미감으로 깨 일반사회에 어필하는 것은 공식이 됐다. 그리고 그 희소성은 대세가 되 오히려 미술계에 안정적으로 진입하는 공식이 됐다. 이제는 일반사회의 허위의식을 깰 차례다. 키치에서 출발하는 아방가르드. 그게 팝아트고 낸시랭이 노렸던 반전 아닐까. 그녀는 강남이라는 키치를 팝아트라는 애티튜드로서 주변화 했다. 이는 싸이의 그것보다 선취한 것이다. 또한 작년의 정치적 행보도 그런 일련의 흐름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낸시랭 VS 강남스타일
강남에 종속된 주체, 서브젝트(sub-ject)였던 그녀가 자신을 강남에 대항해 오브젝트(ob-ject)로 전시하기 시작한 순간. 이제 낸시랭은 속물들의 사회에 적극적으로 던져진 오브젝트(ob-ject, 앞에 던져짐)다. 강남이 그녀를 대상화 한 순간 그녀도 강남이라는 마음의 체제를 대상화했다. 그리고 속물의 화신으로 강남에 자신을 내던지기 시작한다. 강남이라는 속물의 체제가 자신이 속물임을 숨기기 위해 때론 은밀하게, 때론 필사적으로 억압한 것이 낸시랭이라는 물건으로 회귀(프로이트)한 것이다. 그 오브제를 직면하고 컨트롤 할 수 있다면 오브제는 사라진다. 그 방법론은 낸시랭을 유명인사로 만들고, 명망가가 누리는 각종 특권을 쥐어주는 것이다. 이제 강남은 그녀를 길들이기 시작한다. 제거 할 수 없다면 낸시랭이라는 물건을 즐겨라. 그러나 보시다시피 낸시랭은 길들여질만 하나 보다 하는 시점에서 ‘구경꾼들’(기 드보르)의 아슬아슬한 시선을 언제나 배신해 왔다. 길들여지지 않았다. 낸시랭을 ‘조롱할지언정 비판하지 못했던’ 이택광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새로운 생명은 언제나 '이름' 없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 생명은 생명체가 외부환경을 복제해 새롭게 적응해 나가는 투쟁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생성소멸을 거쳐 변화해 나가는 예술이란 이름에 다름 아니다.
‘낸시랭 VS 강남’의 싸움에서 강남은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힌트를 주자면 ‘강남아 끊임없는 고급속물이 되라’는 것이다. ‘속물이 타자의 권위를 곧바로 사용가치로 만드는 것이라면, 고급속물의 전략은 희소성’(지니)에 있다. 그 결과 희소한 ‘강남좌파’와 ‘강남스타일’이 탄생했다고 나는 믿는다. 자신이 고급속물이 되든지, 낸시랭을 희소하게 만들어 소비하든지. 언제나 그랬듯 선빵을 좋아하는 낸시랭은 쁘띠거니와 대단한 친구들을 대동하고 강남에 복귀한다. 2라운드 시작이다.

낸시랭이 강남에 ‘앙’망하는 것은?
부유했던 그녀가 가난해지자 부유한 강남 또한 그녀에게 오브젝트가 되었다. 그녀는 과거에 대한 집착인지 오기인지 모르겠으나 그 오브젝트를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강남좌파와 비슷하게도 자신을 오브젝트로 만들어 강남에게 던져 놓음으로써 맞섰다. 강남좌파의 무기가 도덕성과 진보적 제스춰였다면 그녀의 무기는 아트였다. 자신을 ‘걸어다니는 팝아트’라는 오브젝트로 만들어 강남이 가는 곳마다 앞을 가로막는 ‘움직이는 물건’(오브제)이 됐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대상적 활동’(objective activity,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강신주 재인용)이 가동된다. 이제 강남은 이 것(낸시랭이라는 오브젝트)을 해결해야 한다.
오늘밤 ‘대단한 친구들’과 은밀히 모인 그 자리에서 그들은 낸시랭이 강남에 ‘앙’망하는 것을 들어 볼 참이다. 어떤 결론이 나올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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